弥生時代については、たとえば第二次世界大戦後に発掘が行なわれた静岡県の登呂遺跡などによって平和な農業社会というイメージが一般に広まっていた。
야요이 시대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발굴된 시즈오카현의 도로 유적 등으로 인해 평화로운 농업사회라는 이미지가 일반에 널리 퍼져 있었다.
★これに対し、考古学者の佐原真氏は、弥生時代に入ると、それまでには狩猟用の軽くて小さい鏃(矢じり)しかなかったのに対し、人を攻撃して殺傷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な重い鏃が出現すること、また実際にその種の鏃や鉄剣によって戦死したとみられる人骨が発掘されていることなどに基づき、弥生時代とは、戦争が始まった時代であると主張され、最近はそれが一般に認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る。
★이에 대해, 고고학자 佐原真氏는 야요이 시대에 들어가면 그때까지는 사냥용의 가볍고 작은 화살촉밖에 없었던 데 비해 사람을 공격해 살상할 수 있는 무거운 화살촉이 등장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종류의 화살촉이나 철검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발굴되고 있는 것 등을 근거로, 야요이 시대는 전쟁이 시작된 시대라고 주장했으며, 최근에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게 되었다.
佐賀県の吉野ケ里遺跡に見られるように、堀をめぐらせ、望楼をもうけたりして、防衛の態勢をととのえた集落がこの時代には各地に数多くつくられていたこと、また、農業生産の面からは不便な、高い山や山腹などに作られた集落の多いことなどは、いずれも軍事上の必要に基づくとしか解釈できない。
사가현의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해자를 둘러 만들고 망루를 설치하는 등 방어 태세를 갖춘 집락이 이 시대에는 각지에 다수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농업생산 측면에서는 불리한 높은 산이나 산허리 등에 조성된 집락이 많은 점 등은 모두 군사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縄文時代にも、人と人との戦いがなかったとはいえないであろうが、それは殺人事件の報復のためと言った、小規模かつ偶然的な性格のものに過ぎなかったと推測されるのに対し、弥生時代になると、本格的に集団と集団との間の戦争が生起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조몬 시대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살인 사건에 대한 보복과 같은 소규모적이고 우발적인 성격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면, 야요이 시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집단과 집단 사이의 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これは実は、世界の各地で、農業生産の開始とともに発生している現象であって、要するに生産力の向上にともない、富の蓄積が生まれると、その蓄えられた物資をめぐって争奪のための戦争が始まるのである。
이는 사실 세계 각지에서 농업생산의 시작과 함께 발생한 현상으로서, 요컨대 생산력의 향상에 따라 부의 축적이 생기면 그 축적된 물자를 둘러싼 쟁탈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尾藤正英『日本文化の歴史』岩波新書より)
CHECK Q1 なぜ
弥生時代に
戦争があったと
言えるのですか。
왜 야요이 시대에 전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An
人を
攻撃して
殺傷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な
重い
鏃が
出現すること、また
実際にその
種の
鏃や
鉄剣によって
戦死したとみられる
人骨が
発掘されていることだから。
사람을 공격해 살상할 수 있는 무거운 화살촉이 등장한 점, 또 실제로 그런 종류의 화살촉이나 철검에 의해 전사한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Q2 どうして
弥生時代から、
集団同士の
戦争が
起こ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か。
왜 야요이 시대부터 집단 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An
生産力の
向上にともない、
富の
蓄積が
生まれると、その
蓄えられた
物資を
巡って
争奪のための
戦争が
始まるから。
생산력의 향상에 따라 부의 축적이 생기면, 그 축적된 물자를 둘러싼 쟁탈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